스마트폰 시대. 이용자는 즐거운 비명을 지를 지 몰라도, 개발자들은 괴롭다. 평소 PC용 웹으로만 제공하면 되던 서비스를 모바일웹으로 확장해야 하니 전에없이 일이 늘어난 느낌이다. 스마트폰 종류는 또 왜 그리 많은지. 아이폰, 안드로이드폰, 블랙베리까지. 요즘엔 ‘태블릿’이란 게 나오더니 화면 크기도 제각각인 단말기가 또 사람을 괴롭힌다. 각 운영체제와 단말기 화면에 맞는 응용프로그램(앱)을 일일이 만들려니 보통 일이 아니다. 개발 환경도 다르고, 모르는 기술은 배워가며 적용해야 한다. 요즘엔 ‘이용자 천국, 개발자 지옥’이란 말이 예사로이 들리지 않는다.
개발자만 수렁에 빠졌나. 이동통신사나 제조사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통사는 iOS, 안드로이드OS, 블랙베리OS 등 다양한 모바일 OS를 탑재한 스마트폰을 유통한다. 제조사도 마찬가지다. 기계만 뿌려놓으면 뭐하나. 그 위에서 돌아갈 소프트웨어, 즉 앱을 확보해야 한다. 헌데 OS별로 일일이 앱을 만드는 개발자를 보고 있노라면 속이 탄다. 진열대가 찰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고민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없을까. 조만영 미래웹기술연구소 대표는 ‘표준 웹기술’에서 해답을 찾으라고 말한다. 웹 기술? 그건 웹개발자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 아닌가? 네이티브 앱이 아닌, 모바일웹 기반의 ‘웹 앱’을 만들라는 얘기처럼 들리는데….
“표준 웹기술을 활용해 네이티브 앱을 만들자는 흐름은 지난해부터 꾸준히 증가해왔습니다. 국내에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요. 요즘처럼 OS와 화면 크기가 제각각인 모바일 환경에서, 개발자가 일일이 그 환경에 맞는 네이티브 앱을 개발하기란 만만찮은 일이죠. 표준 웹기술을 활용하면 한 번 제작한 앱을 여러 OS나 기기로 한꺼번에 배포할 수 있습니다. 개발 비용도, 시간도 단축시키고 N스크린 환경에도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죠.”
여기서 표준 웹기술이란 HTML, CSS, 자바스크립트를 일컫는다. 국제표준 제정기구인 월드와이드웹 컨소시엄(W3C)이 제정한 표준 기술들이다. 웹개발자에겐 친숙한 기술인데다 특정 기업에 종속되지 않은 열린 기술이다. 헌데, 이들을 이용해 어떻게 서로 다른 OS와 기기에 맞는 네이티브 앱을 만든다는 얘길까.
비결은 ‘폰갭‘이란 기술이다. 웹으로 만든 앱(웹 앱)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용 네이티브 앱으로 변환해주는 오픈소스 프레임워크다. 화면 크기나 플랫폼에 구애받지도 않는다. 예컨대 표준 웹기술을 이용해 전자책 앱을 만든 다음, 이를 폰갭 기술을 이용해 아이폰·안드로이드폰·블랙베리용 앱이나 아이패드·갤럭시탭용 앱으로 한 번에 변환해 배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같은 기술이 새로운 건 아니다. 2008년 폰갭을 시작으로 지난해 ‘타이태니엄 앱셀러레이터‘가 이같은 네이티브 앱 변환 프레임워크를 제공한다. 어도비시스템즈는 올해 ‘어도비CS5.5′를 내놓으며 ‘드림위버CS5.5′에 폰갭 프레임워크를 적용하기도 했다. 국내에선 올해 KTH가 ‘앱스프레소‘란 이름으로 비슷한 통합 개발환경을 공개한 바 있다. 현재 폰갭처럼 웹 앱을 네이티브 앱으로 변환해주는 기술은 20여종이 나와 있다.
“웹은 태어날 때부터 열린 기술이었습니다. 표준화된 기술은 웹브라우저만 지원되면 어떤 기기나 OS에서든 막힘 없이 이용할 수 있게 해주죠. 특허도 없고, 어떤 회사든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선이 빨리 이뤄지죠. 기기를 제한한 적도 없습니다. 태생이 N스크린에 대응하는 기술이란 뜻입니다. 그런 웹 기술의 중립성이 지금 시대와 맞아떨어져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기술 원리는 이렇다. 웹개발자는 HTML이나 CSS, 자바스크립트 기술을 이용해 원하는 기능을 담은 웹 앱을 제작한다. 그런 다음 폰갭 같은 프레임워크로 이를 감싸준다. 이 과정은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끝난다. 폰갭 프레임워크를 적용한 앱은 말 그대로 스마트폰이 인식하는 네이티브 앱이 된다. 이제 개발자는 이 앱을 애플 앱스토어나 안드로이드마켓, 블랙베리 앱월드 등 원하는 모바일 앱스토어에 뿌리면 된다.
폰갭은 게다가 오픈소스 프레임워크다. 개발자가 일일이 이용자화면(UI)을 구현하기 위해 번거로운 코딩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다. 2006년 W3C가 ‘위젯’ 스펙을 제정한 뒤 일이 쉬워졌다. 웹에 공개된 다양한 웹UI 프레임워크를 활용하면 UI 설계 고민도 줄어든다. jQ터치나 센차터치 같은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다양한 자바스크립트 라이브러리와 예제들을 보고 내려받을 수 있다.
이같은 기술들을 활용하면 개발자는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 훨씬 큰 시장에 자기 앱을 인정받을 기회를 갖게 된다. 아이폰이나 안드로이드폰 시장별로 앱을 따로 제작하지 않아도, 한 번 제작한 앱을 여러 시장에 동시에 선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수익 창출 기회도 올라간다.
이런 움직임은 이미 해외에서 시작됐다. 2010년 2월 열린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 2010′에선 전세계 24개 이통사가 참여한 ‘홀세일 앱 커뮤니티’(WAC)가 공식 출범했다. 국내 KT와 SK텔레콤을 포함해 AT&T, 버라이즌, 보다폰, 도이치텔레콤 등 유명 이통사가 ‘열린 앱 장터’를 만들자는 데 뜻을 모은 셈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소니에릭슨 같은 제조업체도 힘을 보탰다. 국내에서도 이통 3사를 중심으로 오는 8월을 목표로 한국형 통합 앱스토어 KWAC 구축을 추진중이다.
“폰갭 같은 기술은 한마디로 웹 앱을 감싸는 기술에 불과합니다. 실제 앱 성능은 HTML과 CSS, 자바스크립트로 만든 앱의 구동 능력에 따라 좌우되죠. 이렇게 만든 네이티브 앱은 웹브라우저 엔진을 기반으로 동작합니다. 다만, 현재 스마트폰에 내장된 웹브라우저가 제대로 지원하지 않는 웹GL 기반 앱들은 아직까지 사각지대로 남아 있습니다.”
미래웹기술연구소가 도입한 폰갭은 올해 4월28일 ‘폰갭0.9.5′를 내놓으며 국내 삼성전자가 선보인 ‘바다OS’도 공식 지원하기 시작했다. 웹 앱으로 만들어 바다OS 앱스토어인 ‘삼성 웹 앱스’로도 제공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미래웹기술연구소는 폰갭보다 앞선 2월부터 바다OS용 앱 프레임워크 연구를 진행해왔다. 연구소는 최근 이 결과를 담은 보고서를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도록 PDF 파일로 공개했다. PDF로 만든 전자책을 간단한 변환 과정을 거쳐 여러 앱스토어에 손쉽게 적용할 수 있는 전자책 앱 변환 솔루션도 제공한다.
“지금은 스마트폰 뿐 아니라 가전 영역도 N스크린, N디바이스 환경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앱 개발 트렌드도 웹기술을 활용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고요. 앞으로는 웹기술이 앱 개발 분야에서 더욱 각광받게 될 겁니다. 폰갭 같은 기술은 최근 적용된 바다OS까지 모두 7종류 모바일 운영체제를 지원합니다. 국내 개발자들도 이런 흐름에 빨리 올라타고, 표준 웹기술을 활용해 N스크린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조만영 미래웹기술연구소 대표는 2006년 8월부터 4년6개월여 동안 오페라소프트웨어에서 일하며 국내외 주요 스마트폰과 TV, 셋톱박스 등에 모바일 웹브라우저를 적용하도록 지원하는 일을 도맡았다. 삼성전자 옴니아1·2에 들어간 ‘오페라 모바일’이나 삼성전자·보다폰 전략폰인 ‘보다폰360′에 들어간 웹브라우저가 모두 그의 작품이다. 최근에는 휴맥스 셋톱박스에 웹브라우저를 탑재해 스마트TV 경험을 확장하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W3C 대한민국 사무국에서 ‘비즈니스 앤 테크놀로지 스페셜리스트’를 맡아 웹 기술의 중요성을 알리고 강연하는 웹표준 전도사이기도 하다.
http://www.bloter.net/archives/6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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